춤추며 외치는 정치 메시지는 모순일까?

‘저항과 소음’이 만들어 가는 프로테스트 레이브의 미래

Share
춤추며 외치는 정치 메시지는 모순일까?
사진: 몽구스

Read in English →

글 : 이대화
사진 : 저항과 소음 제공

디제잉으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연대하다

지난 9월 래퍼 맥클모어가 에드 시런의 월드 투어 오프닝 공연 도중 "프리 팔레스타인" 메시지를 외쳤다가 이후 공연들에서 강제로 하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같은 투어 참여 뮤지션들이 잇따라 자진하차를 통보했고, 소식은 당시 음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했다. 맥클모어가 입장을 밝힌 인스타그램 게시글의 좋아요 수가 800만을 넘겼다. 지금 팔레스타인 해방을 둘러싼 이슈가 음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디제이, 언더그라운드 댄스 씬에는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이 있을까? 있다. 지난 6월부터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디제이-활동가 연대 '저항과 소음'이다.

사진: 서염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글로 적은 성명서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항적 가사를 담은 프로듀싱 작품을 통해서도 아니다. 이들은 레이브 이벤트를 연다. 디제이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이들의 첫 이벤트에 직접 가 보았다. 6월 20일에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 달리 말해 케익샵 앞 공터에서 열린 'Pride Noise For Palestine' 행사였다. 케익샵 입구를 등지고 도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스피커와 디제이 부스가 설치되었고, 부채꼴 모양의 작은 광장에 수십명의 관객들이 디제이를 쳐다보며 각자의 춤에 몰입해 있었다. 전형적인 레이브의 풍경이었다. 음악도 일반적인 집회와 달랐다. 클럽에 최적화된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이었다. 최면 상태로 몰아가는 반복적인 비트와 웅장한 저역의 울림이 녹사평역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똑같이 사회/정치적 운동에 참여하더라도 자신들에게 익숙한 레이브의 방식을 택했다.

사진: 몽구스

시작은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프로테스트 레이브’였다. 디제이 이브가 2025년 말에 SNS를 통해 일본 내에서도 이례적이었던 그들의 활동에 대해 알게 되며 시작되었다. 그들의 방식을 레퍼런스 삼아 한국에서도 정치 참여적 레이브를 열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이브는 말한다. "프로테스트 레이브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디제잉과 파티 음악을 매개로 반전이나 반제국주의 같은 메시지를 내고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게 굉장히 인상깊었어요."

디제이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지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활동가 단체들도 대등한 한 축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브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 제안해 기획이 시작되었고, 이후 '팔레스타인문화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스라엘 문화예술 보이콧 캠페인 모자이크',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퀴어팔레스타인연대', ‘얼굴들’, ‘접촉면’이 기획단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레이브에 해박한 디제이들과 거리 집회에 익숙한 활동가들이 서로의 장점을 한 데에 모으고 있다.

그렇게 결성된 저항과 소음은 지금껏 두 번의 레이브, 한 번의 토크 세션을 열었다. 6월 20일에 녹사평역 앞에서 'Pride Noise For Palestine', 8월 15일에 이스라엘 대사관 부근에서 'Make Noise For Palestine'을 열었다. 두 번째 행사에는 종각역에서 출발해 종로, 명동 일대를 걷는 거리 행진도 포함됐다. 디제이 부스를 실은 차량이 맨 앞에 서고 레이버와 활동가들이 뒤따르며 "Free! Free! Palestine!" 구호를 외쳤다. 도로가 통제되고 경찰들이 동행했다.

사진: 몽구스

단순히 파티를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왜 이런 이벤트를 여는지 설명하는 '음악은 어떻게 연대가 되는가'라는 토크 세션을 7월 26일 전태일 기념관에서 가졌다. 당시의 대담은 진으로도 발간되었다.

10월 3일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주최하는 전국 단위의 집중집회에 참여했다. 보신각 앞에서 출발한 웅장한 행진 대열에 저항과 소음 디제이들이 올라탄 음악 트럭 두 대가 포함되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대규모 집회에 저항과 소음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는 날이었다. 이날은 음악가 이랑이 무대에 올라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기도 했다.

춤추며 외치는 정치 메시지는 모순일까?

앞서 말했듯 이들의 주목할 점은 디제이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지 않고 레이브로 정치 참여 활동을 벌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주해야 하는 시선들 또한 있다. 6월 첫 행사 준비 중에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달렸던 댓글이 대표적이다. 글쓴이는 영어로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편안한 서울 클럽에서 파티를 벌이는 것은 최근에 내가 본 가장 이상한 광경"이라고 썼다. 음악으로 댄스플로어를 지휘하는 디제이 정체성으로 연대를 고민하다 보니 세상의 상식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저항과 소음 일원들도 그러한 문제제기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참여 디제이 중 한 명인 핸리에게 해당 댓글을 봤을 때의 기분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참혹하니까 댄스 파티라는 말에 걱정하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레이브에 더해 토크 세션을 마련한 이유도 혹여 생길 오해를 방지하고 기획의 의의를 꼼꼼하게 되짚기 위함이었다. 핸리에 의하면 "이 프로젝트의 취지가 가자에서 벌어지는 제노사이드를 가시화하고 모금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리려고" 애썼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 못지않게 의미도 중요했기에 선곡할 때 음악 외적인 측면도 신중하게 고려했다. 핸리는 "곡을 만든 프로듀서가 SNS에 친이스라엘적인 게시물을 올리지는 않는지,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따져보고 걸러냈다." 디제이 신스는 팔레스타인 후원 트랙들을 중심으로 셋을 구성했다. 디제이 핫팟은 도중에 민중가요를 틀거나 이스라엘 군인들을 규탄하는 구호를 음원 파일로 섞기도 했다.

사진: 서염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취지를 해치지 않도록 조심에 또 조심을 기하지만 그렇다고 원론적인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춤을 춘다?

저항과 소음 주최자들이 완전한 논리적 해결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를 발견했다. 레이버나 언더그라운드 댄스를 좋아하는 이들 중 문제에 공감은 하지만 기존 투쟁 방식에는 참여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대안적 통로를 열어줄 수 있었다. 디제이 이브가 일본의 프로테스트 레이브에서 발견한 것도 이러한 허들 낮추기였다.

"그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결집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니, 기존 집회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참여의 허들을 조금 낮춘 게 아닐까 싶었어요. 이게 집회인지 행사인지 경계가 묘한 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형식을 보여주면서 참여를 확장한 거죠. 저는 한국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가시성이 다른 해외 지역에 비해 높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이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연결하고 알리기 위해 다른 형식을 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프로테스트 레이브를 레퍼런스로 삼았어요."

핸리 역시 기획단에 합류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문제엔 공감하는데 기존 집회 방식엔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분들한테 저항과 소음이 대안적인 통로를 열어줬다고 봐요. 평소에 팔레스타인 이슈에 고민이 많았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연대할 수 있으니까 스스로도 자기 효능감이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레이브와 집회가 한 데에 섞이는 형식적 파괴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깃발 아래서 종로 일대를 행진하는 동안 여러 번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지하겠다는 결심도 했다. 이전에는 탄핵 정국을 제외하고는 활동가들의 집회에 참여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가끔은 ‘왜 이렇게 길을 막을까’, ‘왜 저렇게 거리를 시끄럽게 할까’ 불만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 외쳐보면서 알게 됐다. 소음과 통제는 누군가를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러설 곳 없는 목소리가 세상에 닿기 위한 길이라는 걸. 저항과 소음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각성은 더 늦어졌을 것이다.

사진: 서염

또한 레이브와 정치적 메시지를 대립항으로 놓는 사고는 다소 개념적이다. 일반적인 집회 현장에서도 공연과 율동은 대단히 흔하다. 풍물패의 반주에 맞춰 강강술래가 신명나게 벌어지기도 하고, 행진 대열 속에서 퍼커션 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완전한 대립항이 아니라 겹치는 영역이 있다. 게다가 춤이 꼭 유희를 목적으로 존재해 왔던가? 놀기 위한 춤 뿐만 아니라 의식을 위한 춤도 있다. ‘제2의 사랑의 여름’을 영국 대처 시대에 실종되었던 공동체 경험을 되살린 것으로 보는 평가도 있다. 레이브를 하킴 베이가 말하는 '일시적 자율 지대’의 구현이라고 해석하는 사회이론적 접근도 있다. 춤추는 이벤트와 정치 집회 사이엔 차이점 만큼이나 공통점도 있다.

사진: 서염

핸리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투쟁 현장에서 어떻게 춤을 추냐고 염려하시는 분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저항 운동과 음악은 뗄 수 없어요. 공연 예술을 단순히 가벼운 유흥으로만 보는 건 문제인 것 같아요. 레이빙이라는 문화 자체가 억압에 맞서는 정치적인 현장이기도 했고요. 표면적인 모습만 보고 다르다고 쉽게 판단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브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말한다. "레이빙이나 춤은 보통 즐겁고 유흥적인 것, 단순히 기쁜 것으로 표상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춤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돼요. 애도나 슬픔의 현장에서도 춤을 사용하고, 죽음과 관련한 의식에서 춤을 활용하는 문화권도 있죠. 춤과 음악은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 서염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원론적 비판보다는 더 적합한 구체적 방식을 고민해 가는 것이 건설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제이 이브는 BPM을 정할 때 구호를 외치는 데에 적합한지 살폈다. 너무 빠르거나 느리면 숨이 차거나 에너지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구호에 초점을 맞췄어요. 구호를 잘 외칠 수 있는 음악이 없을까 생각해서 드럼이 정확하거나 4분의 4박자 비트가 명확하게 들리는 음악들, 구호를 외치고 챈팅하는 데에 동력이 될 수 있는 음악을 선곡했어요."

핸리는 "원래 전자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어려운 음악이 되면 안 된다는" 것에 신경을 썼다. "현장에 모인 모든 분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려고 노력했어요.” 6월에 열린 첫 번째 행사 때는 스태프로 참여한 활동가들이 등 뒤에 커다란 QR 코드를 인쇄해 붙이고 다녔다.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가자지구 후원을 위한 모금 페이지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최적의 방식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사진: 서염

저항과 소음 같은 집회와 레이브의 중간 형태는 지속 혹은 일반화될 수 있을까. 기획한 당사자들도 지금 시점에서 장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더 큰 물살”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저희 행사를 관심 있게 봤거나, 그날 이태원 근처에 있다가 우연히 행사에 휘말린 사람이 '나도 디제이, 음악가로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 봤으면 해요. 각자 후원 파티를 열거나, 컴필레이션을 기획하는 일이 곳곳에서 생기면 좋겠어요. 연대가 확산되는 거죠." 이브는 말한다.

사진: 서염

확산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브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꼭 디제이가 아니더라도 음악 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음악을 향유하고 있는 분, 혹은 사진, 영상, 디자인 같은 방식으로 씬 안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편하게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걸 같이 진행해 보고 싶다', '이런 걸 함께하고 싶다' 이야기해 주시면 저희끼리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새로운 일을 같이 기획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대의 문턱을 낮추고 싶어요. 함께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연락을 주셨으면 해요. 음악 씬에 계신 분들의 동참을 바란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사진: 서염

저항과 소음 (@noise_for_protest)

이대화 (@daehwazzz)